금년들에 아들이 야구를 보기 시작하고 흥미를 갖기 시작하길래 가능하면 아빠와 같은팀을 응원하자고 롯데자이언츠 팬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역시나 가정환경이 무시못할 요소인지 별다른 저항없이 아들이 롯데팬이 되었다.
나도 7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서 부산고등학교 야구를 보러 다니며 야구를 배웠는데 이런것도 대를 이어간다는게 참 재미있다.
전국의 야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는 수많은 팬들도 다들 아빠나 엄마를 따라서 야구를 보며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금년에 서울에서 잠실야구장에 아들을 두번 데리고 갔다.
첫날은 수월하게 이겼는데 둘째날은 수월하게(?) 졌다.
졌지만 그날 집에가는길에 아들이 롯데 유니폼을 사달라고 했다.
잠실야구장 한쪽 구석에 간이 매장에서 임시로 롯데 용품을 판매했지만 몸에 맞는 유니폼이 없었다.
마침 이번 여름휴가를 그냥 부산의 외갓집에 가기로 했으므로 부산에 가서 사직구장에 있는 롯데자이언츠 샵에서 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보니 기왕이면 일정만 맞으면 사직야구장에서 야구를 한번 보고싶어졌다.
나도 거의 20년동안 가본적이 없는 사직야구장이지만 아들을 위해서 한번 데리고 가고 싶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보여줄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1년에 한번 어렵게 시간내서 3박4일정도 다녀오는 휴가라 맞추기는 어려웠지만 운좋게 일정이 맞아 8월7일날 사직구장 경기를 인터넷으로 예매할수 있었다.
8월6일 부산으로 내려가서 처가집에 캠프를 차렸다.
저녁을 먹으러 시내 모 식당으로 갔는데 거기 대형 프로젝션TV에 롯데 야구 중계를 틀어놓았고 사람들이 다들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뭐 월드컵 축구 중계할때나 WBC 야구 결승전 중계할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열기도 월드컵 못지않다.
아들이 무척 신기하게 그 광경을 쳐다봤다. 아빠 다들 야구 엄청 좋아하네요...
장인어른 장모님이나 부산의 누님과 자형 모두들 만나서 야구 이야기를 해보니 최근 몇경기 내용을 줄줄 외우고 계시는 것이다.
정말 부산의 야구열기는 인류학적인 관점이나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을것 같다.
금요일날 야구보러 가기전 처가집에서 집사람과 장모님이 야구장 가서 먹으라고 치킨도 튀기고 과일과 음료수를 준비해주신다.
같이 가면 좋을텐데 야구장에 직접 가는건 젊은 사람들이나 상습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면 선듯 용기를 내기가 어려운가보다.
냉장고에 있던 작은 캔맥주 몇개를 싸주신다.
헐~ 내 주량에는 턱없이 부족한데 그냥 야구장 가서 사먹어야지 ㅋㅋㅋ.
오랜만에 찾은 사직야구장이다.
내 평생 20대때 딱 한번 왔던것 같다.
우선 아들에게 유니폼을 사줬다.
강민호 이름이 새겨진 선데이 유니폼인데 가격은 7만원. 기꺼이 지불했다.
사실 나는 사직야구장 입장권도 4천원이 너무 싸다고 생각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경기가 우리돈으로 14만원 한다고 한다. 게다가 유럽축구는 유니폼에 후원업체 로고를 쓰며 돈도 받지 않나.
진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프로스포츠가 되려면 다양한 수익구조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
경기 시작하기 한시간 넘게 남았지만 선수들 나와서 연습하는거라든지 구단 마스코트들의 재롱을 보며 지루하지 않게 시간이 갔다.
나도 야구의 골수팬인데 왜 승부가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나 야구장을 직접 찾으면 승부보다는 야구장의 분위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롯데 팬들의 경기장 응원은 정말 만점을 주고 싶다.
우선 응원의 수준이 높고 독창적이다.
왠만한 선수마다 다 응원가가 따로 있고 무척 흥겨운 곡조에 가사내용도 음미해보면 재미있다.
강민호 응원가, 가르시아 응원가, 조성환 응원가 이런것들도 곡조가 흥겹고 즐겁지만 박기혁 응원가 같은건 따라 부르며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로 재치 만점이다.
박기혁 안타하나 쳐주세요 박기혁~ 볼넷도 괜찮아요~ ㅋㅋㅋ
상대팀을 공격하거나 약올리는 내용도 아니고 코믹하면서도 즐거운 내용이다.
이러한 응원가들은 거의 모두 팬들이 스스로 자생적으로 만들어 낸 응원가들이다.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엄청난 함성으로 마~ 하고 소리치는것이나 파울볼이 넘어오면 주변에 아이들에게 주라고 아주라~ 하고 연호를 하는 것 등은 정말 밉지않고 수준높은 응원문화라고 생각된다.
사직구장의 또하나의 볼거리는 5회가 넘어가며 관중들에게 지급되는 빨간색 쓰레기 봉투를 머리에 다들 쓰는 이른바 봉다리 응원이다.
5회말이 되니 봉다리가 돌았다. 받지 못한 사람들은 봉다리를 달라고 봉다리~ 봉다리~ 하며 연호를 한다.
큰 어려움 없이 전 관중에게 봉다리가 지급되고 다들 머리에 썼다.
아가씨들은 개성을 살려서 나비모양으로 만들어서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개나 여우같은 짐승의 귀 모양을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시구를 하러 왔던 주한 미국 대사도 봉다리를 머리에 쓴 사진을 다음날 뉴스에서 봤다.
나는 옛날부터 야구를 즐겨 봤으므로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며 이런 성숙된 응원문화가 정착된 과정을 알고 있다.
옛날에는 승부에 집착하여 홈팀이 지면 경기장에 오물을 던지고 심한경우는 상대팀 버스를 불질러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준높은 시민들은 경기관람이 계속되며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나갔다.
유럽의 축구는 항상 훌리건들의 과격한 폭력에 시달린다.
2002년 월드컵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사불란하고 수준높은 길거리 응원에 세계가 감동하지 않았었나.
다른 지방의 야구팬들도 누군가 구심점이 되서 이끌어주면 월드컵 응원하듯이 수준높은 응원을 할 수 있을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야구팬들도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고 한게임 한게임의 승부에 너무 집착하기 보다는 프로 스포츠 관람을 인생의 하나의 즐거움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날은 경기도 이겼고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다들 한방씩 쳐줬고 투수도 잘던졌고 스코어도 너무 초반부터 벌어지지 않고 참으로 최고의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후 100만관중 돌파 기원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다음날 경기에서 100만관중 돌파가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다.
아들은 휴대폰으로 불꽃놀이를 동영상으로 찍으며 즐거워 했다.
딸이면 이렇게 같이 야구를 보러 왔을까?
한때는 재롱을 부리며 엄마아빠를 녹여버리는 딸들을 부러워했으나 이제는 아들과 노는것도 재미있다.
정말 훌륭한 2009년 여름의 휴가였고 길이 기억에 남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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